38 밋밋한 죽음
시사성을 포착하는데 전념 하면서 세계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는
젊은 사진작가들은 자신들이 죽음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시대가 죽음을 떠 안는 방식이다
사회에서 죽음은 어디에 존재 할까
종교 ?
아니면 삶을 보존하기를 원하면서도 죽음을 창출하는 사진 이미지 속이다
삶/죽음이라는 패러다임은 최초의 포즈를 최후의 인화지와 분리시키는 것인 단순한 셔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진은 소멸하기 마련인 종이의 운명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 처럼 사진은 움트는 은 알갱이로 태어나 한순간 피어 났다가 시들어 간다
빛과 습기의 공격을 받으면 그것은 퇴색하고 쇠약해져 쓰러져 간다 , 그러면 그것을 내 던지는 수 밖에 없다
사진은 확실하지만 덧없는 증언이다
내가 죽을때 쓰레기통에 던져질 이사진과 더불어 사라지는건 사랑이다
그리고 남게 되는 것은 무심한 대 자연만 이다
39 푼크툼으로서의 시간
또다른 푼크툼은 / 지금까지은 형상의 이미지 푼크툼인데
시간의 푼크툼 이다
- 더이상 형태가 아니라 강도인데 , 바로 시간이고 , 노에마 ( 그것은 존재 했음 ) 의 가슴 아픈 과장이며, 그것의 순수한 표상이다
40 사적 공적
사진이 모든 일반성을 벗어나 우리들 각자 하나하나에게 말을 걸러 오는 것은 사진 안에 미래의 나의 죽음에 대한 그 절대덕인 기호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푼크툼이 가져 오는것은 trauma 다
시간의 체험을 통해 죽음을 인지 한다
어머님 = 죽은분 = 시니파앙 = 본질적 고독의 존재 가 ----- 나를 만나니까 나도 죽음 사람이 된다
나 = 시니피앙
41 탐색하기
온실 사진을 열심히 탐색 했다.. 물리적으로 확대.. ...등 해봤자 그냥 인화지일 뿐이다]
사진의 노에마가 그곳에 존재 했기 때문에 결국 열심히 탐색해서 남는건 아무것도 주어지는게없다
온실 사진 앞에서 나는 이미지의소류를 향해 팔을 헛되이 뻗은 무능한 몽상가이다
42 닮음
44 밝은방
사진을 깊이 파고들 수도 꿰뚤어 볼 수도 없다는 이 법칙을 따라야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 ( 사진의 기술적인 기워 때문에 어두운 통로) 라고 부르는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카메라 루시다 라고 불러야 한다 ( 이 전환을 푼크툼적 요소가 담당한다 ) = 가능한 모든 의미의 깊이를 부른다.
사이렌의 매력과 매혹을 만들어 주는 그 존재----- 실재 없다 즉
부재를 지니고 있음으로써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뚜렷하다( 블랑쇼)
사진은 시간 " 그때 거기서 그랬었음 " 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줌
말을 막히게 한다,
이미 꽉 차 있음
더이상 부여 할 것이 없다
나로 하여금 자꾸 무었을 부여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폭력적이다 너무 적나라 하게 보여줌
미메시스와 단절 = 근대 예술
45 분위기
The air = aura = expression
다시 살려 내고 싶은 미친듯한 열망
바로 그 순간 = the supplement 보충 잉여
사진에서
하나의 존재가 관련될때 , 사진의 명백성은 전혀 다른 쟁점을 가진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 얼굴이라면 사진은 존재의 실존을 인증하는 이상 , 이 존재를 전체로 본질로 그자체로 되찾고자 한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고통 , 나의 광적인 욕망에 응해주는 무언가는 명백하지만 있을것 같지 않은 분위기 이다
분위기란
닮음이나 유사도 아니다
분위기는 육체에서 영혼 ( 아니물라 = 개인적 영혼 ) 으로 이끄는 잉여적인 그 무었이다
분위기는
동일성의 물러설수 없는 추가 이고 어떠한 위세도 제거된채 무상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온실사진에서
갑자기 마스크가 사라졌다 남아 있었던것은 하나의 영혼 이었다
분위기는
삶의 어떤 가치를 얼굴에 신비 스럽게 반영케 하는 정신적인 무엇
육체를 따라 다니는 빛나는 그림자 이다
사진 작가는 가느다란 빛의 탯줄= 시간의 탯줄 불멸의 탯줄을 통해서 사진에 생명을 부여한다
사진의 인물에 그림자를 부여 할줄 모른다면 사진의 인물은 영원히 죽는다
46 시선
시선의 문제 to see ; 의미 없이 본다
to look ;응시 한다 자세히 본다
* 노에마 없는 노에시스
사진은 주의력을 지각과 분리 시키고 전자 ( 본다 ) 만을 전달 하는 것 같지만 후자( 쳐다 본다) 없이 전자는 불가능 하다
사유 없는 사유 행위, 목표물 없는 조준
* 노에시스 ; 의식의 기능적 작용적 측면
* 노에마 ; 의식의 대상적 측면
후설 이전까지는,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인식체계인 이성이 주어져있으며, 이러한 보편적 체계인 이성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가장 잘 대표하는 철학자가 바로 칸트이지요. 칸트는 이러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영역별로 나누어 치밀하게 분석했는데, 후설은 여기에 의문을 던집니다. 그러하게 선험적인 존재(경험을 초월해 존재하는 보편적 요소)로서의 이성이 과연 존재할까?하고 말이지요.(물론 이는 비단 후설만이 던진 질문은 아닙니다.) 따라서 후설은 이러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보편적 인식체계인 이성으로써 세계를 인식한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견이 담긴 새로운 인식체계인 '의식'에 의거해 인간의 인식능력을 설명했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보자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인데, 이것만으로도 의식에 대한 철학적 정의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이성은 보편적 체계이기에, 인간이 자든 깨어있든 간에, 죽기전이라면 누구나 다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본 반면, 이러한 의식은 오로지 깨어있는 동안에만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이라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점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또 한가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더 존재하는 데, 그것은 이성은 선험에 기초를 두지만, 의식은 전적으로 경험에 기초를 둔다는 측면입니다. 즉 인간의 경험의 합으로써, 전체적인 의식이 이루어지게되는데, 그러한 경험을 다듬어나가는 과정에서 쓰이는 도구가 바로 노에시스와 노에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에시스와 노에마는 대체 무엇인가? 이제 이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에시스는 경험된 표상의 한 단면을 의미합니다. 가령 정사각형이 있다고 해보자면, 우리는 정사각형 그자체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차원이 아닌 삼차원이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정사각형 그자체를 처음부터 경험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분할된 한 단면씩만을 경험할 수 밖에 없지요. 즉 우리는 정사각형에 대해 이러한 표상들 각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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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각각의 표상만을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얻어진 단편적인 표상의 이미지를 노에시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된 표상들이 합쳐지다보면, '아 이것이 사각형이구나.'라고 알 수 있겠지요? 즉 처음의 사각형 한 장만을 두고선, 저것이 정사각형인지 뭔지 모르지만, 정사각형에 대한 수많은 노에시스들을 경험하다보면, 그것들을 합으로써, '저것이 정사각형이구나'라고 알 수 있으며, 이렇듯 수많은 노에시스가 합쳐져 인간에게 인식되는 하나의 완성된 개념체, 혹은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노에마입니다. 즉 노에시스에 해당하는 수많은 표상이 합쳐져, 하나의 노에마를 이루는 셈이지요. 예를 들자면, 삼각형에 해당하는 수많은 각각의 표상들의 조각이 노에시스라면, 그 노에시스의 합으로써, 인간에게 인식되는 개념으로서의 '삼각형'은 노에마가 되는 것입니다. 혹은 비단 개념(삼각형, 사각형, 바나나, 우유등등)에 해당하는 존재가 아니더라도, 해당존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의 구체적인 존재(가령 어디에 나뒹구는 찌그러진 코카콜라깡통)또한 노에마로서의 의미를 가지지요.
이렇듯 노에시스의 합으로써 노에마가 이루어집니다만, 하나의 노에마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모든 장면의 노에시스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경험된 노에마를 바탕으로, 한 노에시스를 통해, 새로 경험되는 한 노에마를 통째로 유추할 수도 있지요. 가령 앞서 예로든 바닥에 나뒹구는 코카콜라 캔을 보자면, 우리는 그 구체적 캔에 해당하는 장면(하나의 노에시스)을 비록 처음 보았을지라도, 이전부터 봐온 원형의 물체, 더 나아가 코카콜라캔 등의 노에마를 통해, 그 단 한장의 노에시스만으로도, '저것은 코카콜라 캔이구나'라는 노에마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노에시스와 노에마구조를 통해 인간은 경험해나가며, 이것들이 모여있는 총체가 무엇이냐? 바로 의식이지요
사진의 운명
사진은 내가 진정한 총체적 사진을 발견 했다고 믿도록 하면서 현실 ( 그것이 존재 했다 ) 과 진실 ( 바로 이것이다 ) 의 노라운 혼합을 수행 한다
그것은 확인적이자 경탄적이 된다
그것은 정서 ( 사랑 , 연민, 애도 , 충동, 욕망 ) 가 존재의 보증가 되는 광적인 지점까지 인물 초상을 이끌고 간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광기에 접근하며 광적인 진실과 합류 한다
47 광기 연민
사진의 노에마는 단순하고 평범하다, 아무런 깊이도 없으며 그것은 존재 했다 일 뿐이다 라고 말할 비평가들을 알고 있다
명백함은 광기이다
사진은 나에게 이상한 영매, 새로운 환각 형태이다
지각의 차원에서는 허위 이지만 , 시간의 차원에서는 진실한 환각 형태이다
사진이 야기한 사랑에서 또다른 음악이 들렸다 - 연민이다
48 길들여진 사진
환각 = hallucination
환상 = illusion -- 영화
yhjmac2012.11.11 16:56
yhjmac2012.11.11 13:08
yhjmac2012.11.10 16:52
yhjmac2012.11.09 13:17
yhjmac2012.11.0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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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jmac2012.11.07 00:47
yhjmac2012.11.05 23:46
yhjmac2012.11.04 22:34
yhjmac2012.11.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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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jmac2012.09.28 13:29
yhjmac2012.09.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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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jmac2012.09.08 17:04
yhjmac2012.09.08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