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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문화를 민주주의 관점에서 관찰하며 아름다운것과 추한것, 중요한것과 시시한 것의 차이 그 이상을 살펴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상이한 가치를 차별하는것이 비열하고 속묵적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오늘날 미국 예술은 현실에 의해서 그 신비로움이 벗겨지기는 커녕, 현실의 신비로움을 벗기는 데 더 골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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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등장한 초창기 사진이 이상화된 이미지가 돌거라고 예견했다 - 대부분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은 아직까지 이런 목적을 쫏는다 ,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인이나 석양처럼 아름다운 무었인가를 찍은 사진이 아름다움 사진이다.
1920 년대 서정적인 피사체를 멀리 하고 평이하며 속되고 따분한 제재에 천착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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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등장한 초장기에는 사진이 이상화된 ( 아름다운) 이미지가 될것이라고 예견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은 이런 목적을 쫓는다. 이런 사람들에겐 여인이나 석양처럼 아름다운 무언가를 찍은 사진이 아름다운 사진이다. 1920 년 부터는 사진 전문가들은 서정적인 피사체를 멀리 하고 평이하며 속되고 따분한 제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최근 수십년간 사진은 위트먼이 제안한데로 아름다움과 추함의 정의를 바꾸는데 어느정도 성공해 왔다. 아름다운것과 아름답지 않은것을 구분하는것은 모호해 지리라.
그러나 2 차 세계대전이후 성숙해진 미국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는 휘트먼식의 삶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모조리 기록하라는 휘트먼식의 요구는 매력을 잃어 갔다, 난장이의 사진을 찍으면서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난쟁이는 그저 난쟁이 일 뿐이다
스티글리츠의 291 화랑이라 카메라 워크에 수록된 사진을 기점으로 미국의 사진은 휘트먼의 프로그램을 확증하는 단계에서 패러디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이 때 워커 에반스가 가장 앞섰다. 그러나 에반스는 당대의 스티글리츠 제자들의 휘트먼식의 과장된 분위기들과 결별을 선언했다. 에반스는 스티 글리츠가 예술인척 한다고 생각 했다
스티글리츠는 휘트먼 처럼
어떤 공동체에 일체감을 부여해 주는 도구로 예술을 활용 한다 라는 것과
예술가란 자신을 스스러 드러내는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자아라고 치켜 세운다는 것 사이에서 전혀 모순을 느끼지 못했다
에반스는 교양 있고 권위 있으며 초탈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오늘날 사진이 권위나 교양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휘트먼의 시 - 미국인들이 꿈꾸는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을 만큼 높이 끌어 올리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이 메세지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질에는 낯설기 그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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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식의 관능적 포옹 - 스타이켄의 인간 가족전 ( 결국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르면서 까지 온 국민을 끌어 안음)=== 가장 많은 사람을 모음. 이후 다이안 아버스 회고전 까지 1972 년
다이안 아버스 - 인류란 하나가 아니었다
스타이켄 - 흥분제
아버스 - 진정제
같은점 = 현실을 역사적으로 이해 하지 않았다는 점
스타이켄 = 역사가 감내해 왔던 중압감을 부정 ( 역사에 새겨진 차별, 불의 분쟁같은 진정한 중압감)
아버스 = 절망적 소외감속에서 서로들 낮설어 하느 세계를 보여주며 정치를 단호히 단되 했다
같은점 = 역사와 정치를 뭔가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 인간 조건을 일반화 했던 스타이켄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인간 조건을 낱낱히 쪼개 놓았던 아버스의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 뿐이다
아버스의 인상적인점은
예술사진이 가장 열렬히 추구해 왔던 계획 ( 희생당한 자나 불행한 자를 향한 관심의 촉구) 을 실행에 옮기면서도 , 관람객의 연민을 자아내지는 않앗다는 점이다
아버스의 사진이 뛰어난 이유는
사진속의 피사체가 우리의 감정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듯한데 반해 그 분위기는 냉정하고 무미 건조 할 만큼 정중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관조적이기 그지 없는 어버스의 인물사진이 일종의 교훈극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정중함이다. ( 촬영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자세를 취했다 )
아버스의 사진에서
정면을 바라본다, 진지함 솔직함, 피사체의 본질
측면 응시는 뭔가 심오하고 고귀한 미래
아버스는 == 이들은 나를 흥분 시킨다, 나는 늘 그들을 찬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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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년 아버스의 자살
일종의 신격화, 그녀의 작품이 관음증이 아니라, 진정성의 결과 였으며, 냉정함 보다는 인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입증해 주는 득 했다
예술가는 자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종군 사진가
카메라가 공격 무기- 그것은 곧 언딘가에서 사상자가 생긴다는 뜻이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히 파고 들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 해 주는 시인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서 과감히 세계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진작가 이다
아버스
자본주의 국가의 고급 예술이 걷고 있는 주된 경향, 당대의 도덕적 감각적 불쾌감을 억누르거나 희석시키려는 경향의 좋은 사례이다, 예술은 도덕을 변화 시켰다, 도덕적 감각적 불쾌감이 은폐 되어 갈 수록 사람들은 진실의 명목성 , 즉 예술과 도덕이 만들어 놓은 금기는 자의적일 뿐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괴함이 자아를 해방 시키기 보다는 없애 버렸던 것이다
연민이 없는 시선- 현대의 윤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특성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잔인하고 비열 할 수 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결코 외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진이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 원하는 것이면 무었이든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이다.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이다. 그사람 삶에 끼어드는것이 아니라 방문하는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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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피사체는 공적이라기 보다는 사적인 병리 현상을 , 공공연하기 보다는 은밀한 삶을 보여주는 비역사적인 피사체 이다.
카메라를 통해서 현실 감각을 획득 했다
괴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자신의 순진함을 깨버리고 뭔가 특권을 누린다는 기분을 없애고, 편안히 지낸다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고 싶은 욕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버스가 진지한 작품을 발표 했던 10 년간은 온갖 괴짜가 공공연히 제모습을 드러내고 아무런 해가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예술의 제재로 인정을 받게 된 시절과 일치 하거나 상당 부분 겹친다
아버스의 작품은 일종의 반작용이다, 고상함에 대한 반작용, 기존에 승인되어 왔던것에 대한 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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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나에게 어떤 의미기 있다고 생각한 것을 염두에 둔채 피사체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스가 사진에 찍은 피사체는 모두 한 가족의 구성원들, 한 마을의 거주민들 이라고 해도 무방 하다,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본다
스티글리츠도 현대의 물질 만능 문명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메라는 그의 창 이었으며, 마천루는 풍차였던 셈이다. 로젠펠드는 이를 끊임없는 긍정 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작가는 현실을 보호한다, 즉 미국이라고 불리는 흐릿하고 놀랄 만큼 모호한 것의형태를 보여주는 데 카메라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1 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이 노골적으로 대기업과 소비부의에 물들자 사명감 같은것은 곧 사라져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스티글리츠는 영혼을 지닌 미국이 어딘가에 아직 존재 하고 있으며, 미국이 서구의 무덤은 아니라고 빙었던 인물 이었다, 그렇지만 프랭크와 아버스를 비롯해 동료와 후배 사진작가들은 은근히 미국이 서구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사진이 휘트먼식의 주장에서 자유로워지자, 즉 사진이 어떻게 하면 교양 있고 권위 있으며 초탈한 것이 될 수 있는지 더이상 생각 하지 않게 되자, 미국의 가장 뛰어난 사진은 초현주의라는 안식처에 빠져 들게 됐으며, 미국도 자연 스럽게 초 현실주의 국가로 알려지게 됐다
yhjmac2012.09.08 17:02
yhjmac2012.09.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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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jmac2012.09.08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