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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철학 - 진중권 - 제 7 강 색면 추상 - 숭고미학 II
제7강 색면추상: 숭고미학 Ⅱ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한계는 추상표현주의의 또 다른 흐름, 즉 색면추상을 다룰 때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린버그라면 뉴먼의 캔버스에서 먼저 ‘평면성’을 볼 것이다. 사실 물감이 덕지덕지 앉은 폴록의 작품보다 미끈하게 칠해진
뉴먼의 고른 캔버스가 훨씬 더 평면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뉴먼의 캔버스는 원색이나 단색의 색면으로 환원되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색은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고 오직 제 자신만을 주장한다. 이를 보며 그린버그는 아마 회화의 ‘자기 지시성’을 떠올렸을 것이다.
문제는 뉴먼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뉴먼은 형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주제(subject matter)였다.
그가 보기에 형식미에 갇힌 유럽 회화에서는 “기하학이 형이상학을 잡아먹어 버렸다.” 미국의 회화는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형식이 아니라 주제를 탐구해야 한다. 이게 뉴먼의 생각이었다. 한 마디로 고전적 아방가르드가 형식의 ‘미’를 추구했다면,
미국의 새로운 아방가르드는 어떤 체험을, 즉 ‘숭고’의 체험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뉴먼의 캔버스는 매우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린버그의 생각과 달리 회화를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뉴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외려 그는 회화로써 어떤 ‘공간’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어떤 ‘장소’를 창조하려 했다. 물론 그 ‘장소’란 원근법의 도움으로 캔버스
‘뒤로’ 펼쳐지는 시각적 환영이 아니다. 마치 자기장처럼 캔버스 ‘앞으로’ 펼쳐지며 관객을 덮치는 촉각적 실재다. 뉴먼의 캔버스는
숭고한 ‘장소’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평면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 체험이란 유태의 전통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성을 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나무를 보고 거기에 다가가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 이 목소리와 더불어 모세가 선 그 곳은 일상적인 공간(space)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소(place)로 변용된다.
뉴먼은 관객들이 자기 캔버스 앞에서 호렙산의 모세처럼 이 장소성을 체험하기를 원했다. 이 장소를 그의 친구이자 비평가였던 토마스
헤스는 유대교의 ‘마콤’이라 불렀다.
형식적으로 보면 뉴먼은 몬드리안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뉴먼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화가였다.
그의 캔버스의 추상적 형태는 몬드리안의 것처럼 복잡한 사물을 단순화하여 얻어낸 시각적 추상이 아니다.
성소(聖所)를 표시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하학적 문양에서 따온 것이다. 이 문양으로써 그는 “열광”(exaltation)이라고
하는 어떤 뜨거운 감정을 일으키려 했다. 이것이 그가 노리는 작품의 효과였다. 뉴먼은 회화로써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려 한 게 아니다.
그의 캔버스는 ‘자기를 지시’하지 않는다.
뉴먼의 회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수직선(zip)은 여러 문화에서 초자연적인 가르침으로 해석되며,
이는 그가 추구하는 열광으로 유도한다
.
게다가 ‘올 오버(all over)’의 문제가 있다. 폴록과 뉴먼은 배경과 형상의 구별 없이 캔버스의 전면을 균등하게 사용한다.
그들의 캔버스에는 한계가 없어, 원칙적으로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도 무방하다. 하지만 형은 원래 유한한 것이고,
구성은 형을 배치하는 것이다. 유한한 형이 없다면, 구성도 있을 수 없고, 그 결과 형식미학도 성립할 수 없다. 무한한 캔버스는
몰형식을 지향한다. 몰형식은 숭고의 미학에 속한다. 미는 형식의 창조를 의미하나, 숭고는 형식의 파괴와 더불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이 얼마나 핵심을 벗어났는지 알 수 있다. 차라리 해롤드 로젠버그가 폴록의 작품에 붙인 명칭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액션 페인팅”이라는 표현은 적어도 숭고의 요소들, 말하자면 현장성, 사건성, 제의성의
계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 뉴먼 자신도 자기의 작업이 액션페인팅에 가깝다고 보았다. “예술의 언어는 추상적이어야 한다.
그것의 동학(動學)은 제의적 의지여야 한다. 그것의 목적은 비전과 계시여야 한다.” 이것이 뉴먼이 예술에 내리는 명령이다.
그린버그의 비평이 칸트의 ‘미론’에 의존한다면, 뉴먼과 로스코는 스피노자와 버크에서 비롯된 ‘숭고론’의 전통을 잇는다. 물론 칸트에게도 숭고론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린버그와 색면추상의 관계는 어쩌면 칸트의 미학을 구성하는 두 요소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린버그는 칸트에게서 ‘미의 분석론’을 취했다. 뉴먼은 ‘숭고의 분석론’을 취했다. 각자 취할 것을 취했다. 문제는 ‘미의 분석론’을 가지고
‘숭고’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의 이름으로 그린버그는 예술의 변방이었던 뉴욕을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흐름을 보기에 그의 아방가르드는 너무나 고전적이었다. 형식주의의 틀에 갇힌 그의 비평원리는 색면추상은 물론이고,
사실 폴록의 작품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도 충분하지 못하다. 그가 놓친 것은 현대예술의 새로운 경향, 즉 숭고의 미학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는 60년대 예술의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을 보는 데에도 실패했다. 팝아트와 더불어 시작되는 복제예술의 미학, 즉 시뮬라크르의 미학이 그것이다
.
그린버그는 뒤샹을 경멸하고, 워홀을 무시했다. 이 엘리트주의자의 눈에 그들의 작품은 전위(avantguard)가 아닌 후위(reargard), 말하자면
대중의 저급한 취향에 영합하는 ‘키치’로 보였다. 그는 팝아트가 일시적 유행에 그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그의 예측과는 달리 워홀이라는 스타와 함께
팝아트는 나날이 확산되고, 그가 지지했던 추상표현주의는 서서히 미술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추상표현주의의 퇴조는 한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했다.
그린버그의 퇴장과 함께 전후에 부활한 모더니즘도 마침내 종언을 고한다.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버넷 뉴면 -
추상적 사유를 위한 그림이다, 시각적 추상은 아니다
형식적 추상이 아니라 , 내용적 추상이다
motive 는 american indian 성스런 드러냄의 기하학
1) 추상적 사유의 표현이다
2) 공간 연출 Makom (신 그자체, 신성의 상징, 알렙 (이세상의 모든 장소를 포함한 지점))
주객 상호 작용이 있다, 종교와 같다,
3) Zip ; 수직선 , 어느 문명에나 있는 하늘과 땅의 잇는 코드
그의 그림엔 subject matter 가 있다, 내용적 회화임을 강조
그러나 평론주의자 - 칸트식의 형식주의로 해석
형식주의자가 볼땐 - 차가운 추상의 계열이다
1960 년 초 전시 - 팝아트가 등장할 무렵- 추상 표현주의의 몰락의시대
잭슨폴록의 후예다. 그린버그의 라인을 잇는 , 평면적, all over ,
all 을 포함하는 nothing
잭슨폴록식으로 보면
회화는 매체에 대한 탐구 - 뉴면을 보면 순수색을 볼수 있다
,
달라진 색깔에만 주목하게 만든다
이는 달라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것
대상성이 없음
컴포지션으로 이해?
뉴먼식 해석
매체에 주목이 아니라 열광하게 하는 뜻
내용주의 미학이다 subject matter
형식주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의 연장으로 봤다
색면 추상으로 보면 잘못된 번역
색면 회화라고 번역해야 한다
1. 내용주의미학
2. 구성이 아니라측면 왜냐면 구성은 유한한 대상이기 떄문
3. 성소 - 누가 인정해 줘야 한다 - 관객이 있어줘야 한다 - 관객을 구성요소로 갖는
연극 - theatrical 하다 - 그린버그식 회화는 모던에 대한 자기 반성 에 대한 회화
회화로 연극을 탐구 하면 안된다 - 설치식의 뉴먼은 아니다
따라서 그린버그식은 아니다
실은 잭슨 폴록과 동시대
잭슨폴록이 안팔리자 뉴먼의 전시가 시작됨
그린버그의 몰락
이후 팝아트가 나오면 손을 못댐
7-2
미니멀리즘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 평면성
90 년대 - 앤디 워홀이 트랜드가 됨
그린버그는 그러나 60 년대 이후엔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라고 함
앤디워홀의 팝아트를 부정하는 모습
형상의 빈곤과 관념의 과잉
100 년전 조선무속고 저서에 박사 무당 광대 같은 이름
예술 종교 철학이 하나 였다
박사 학문, 광대 예술, 무당 종교 3 개가 분화 되기 이전 하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