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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캔들 #1 , 클림트 와 멘델스존
클림트
1898 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빈 분리파를 결성 리더가 된다
내가 미술사를 기억할때 년도를 외우는 방법은
내가 가장 기억하기 쉬운 기준이 하나 있다
미술사에서 로코코가 물러나고 신 고전주의와
그리고 낙선작 전시회를 시작으로 인상파가 시작되는 즈음
프랑스 정부에서 코메디 같은
사진의 발명을 천명한다
1839 년이다
정치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마무리 되고 다시 복고 왕정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 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이시기의 미술사를 사진발명의해
1839년 이전인가 이후인가를 기준으로 읽어 내는 습관이 있다
그러니까 이 시기 클림트는
프랑스에서
예술은 더이상 아름다움을 추구 하지 않는다 라는
인상파 큐비즘 입체파 표현주의가 싹트는 시기이다
그래서 빈 분리파에서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클림트를 위시로
인상파 같이 붓 터치 하나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림이 아닌
정성들여 아름다움을 추구 하자 라는 클림트가 활동하는 시대였다
사실 뭐가 위대한가?
이런 어리 석은 질문이 어디 있을까?
난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가 그린
어떤 인물화속에서 손가락을 그린 고흐의 감성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단 3 개의 붓선으로 너무나 완벽한
손가락이 보여 졌고
난 마음속에서 엉성한 터치로 심금을 울리는
고흐의 그림을 감탄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그림
클림트의 키스는 ?
100 년전 클림트가 죽을때 모든 남겨진 기록은 불태워 졌다
오로지 그림만이 남았다
일본의 어느 평론가는 이 키스는 뱀파이어에게 당하는 여인의 모습일것이라는
평론이 있기도 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나오는 여성상은
팜므파탈의 성격이 짙다고 한다
그리고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의 그림도 있다
팜므 파탈의 여성권의 관점에서
100 년전 이것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였던 것이다
여인의 오른손의 가볍게 쥐어진 주먹과
그리고 힘이 들어간 발가락
그리고 아직 허락하지 않은 입술
그리고 평온한 표정
모든것은 그림속에서 우리와 교감을 시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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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유태인
천재 작곡가
38 세에 생을 마감
그가 없었다면
아마 바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부자였다
그의 집안은
은행가였고
카메라와 필름으로 유명한 아그파를 소유 했다
성가의 시대
무반주 노래가 있었는데
슈베르트의 시대로 와서 이 주인격인 노래에
더불어
하인격인 반주가 격상되어 가곡이라는 장르가 탄생 되었다
그런데
멘델스존은
이 가곡에서 노랫말을 빼 버렸다
그래서 만든 음악이 무언가 이다...
그런 그에게는 정신적인 버팀목 누이가 있었고
오누이 펠릭스 멘델스존과 파니 멘델스존은
서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누이가 작곡한 무언가중 일부가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발표 되기도 했다
그당시 여성은 외부 활동을 못했기 때문일까?
집안에서는 당시 여인은 오로지 가정 주부만 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은 너무나 많은 업적이 남기고
38 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멘델스존이 죽던해에
누이 파니 멘델스존도 죽었다
소울메이트...
한사람이 죽으면
다른사람도 죽어야 하는...
고흐와 테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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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캔들 #1 , 클림트 와 멘델스존
Date2013.05.17 Byyhjmac Views1207